본문 바로가기
음악 이야기

말러의 '교향곡 9번'과 죽음의 그림자

by 해이야 2024. 10. 10.
구스타프 말러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의 교향곡 9번은 그가 생전에 작곡한 마지막 교향곡으로, 이 작품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채 완성된 말러의 가장 심오한 음악적 유산 중 하나로 여겨집니다. 말러는 이 교향곡을 완성한 후, 1911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말러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쓴 음악적 유언으로 해석합니다. 교향곡 9번은 말러가 음악을 통해 어떻게 삶과 죽음을 마주했는지를 강렬하게 드러내며, 그 속에는 깊은 내적 갈등과 숙명적인 이별의 감정이 녹아 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와 말러의 건강 문제

말러는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심각한 건강 문제에 시달렸습니다. 1907년, 그는 심장병 진단을 받았고, 이 병으로 인해 자신의 죽음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건강 문제와 더불어 아내 알마와의 관계 악화, 첫딸의 사망, 빈 오페라하우스의 지휘자로서의 압박은 말러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가중시켰습니다. 교향곡 9번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했으며, 말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죽음과의 끊임없는 투쟁과, 동시에 삶에 대한 깊은 애착이 교차하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제1악장: 느리고 장중하게 (Andante comodo)

말러의 교향곡 9번의 첫 악장은 그 자체로 삶과 죽음의 갈등을 상징하는 듯한 긴장감을 자아냅니다. 이 악장은 느린 안단테로 시작하며, 마치 심장의 고동처럼 울리는 반복적인 리듬이 주요 동기로 등장합니다. 이 심장 박동 소리는 말러가 자신의 심장병을 의식하면서 삶의 끝자락에 서 있다는 불안과 공포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습니다.

 

처음에는 고요하게 흐르는 듯하지만, 이내 절망적인 불안과 내적 갈등으로 폭발하는 이 악장은 죽음의 불가피성을 느끼면서도 여전히 삶을 붙잡으려는 말러의 몸부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치 말러는 여기서 죽음이 다가옴을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온전히 수용할 수 없는 인간적 갈등을 음악 속에서 드러내고 있는 듯합니다. 특히, 선율이 고조되며 다시 고요해지는 과정은 마치 죽음 앞에서 무력해지는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제2악장: 활기차게 (Im Tempo eines gemächlichen Ländlers)

두 번째 악장은 느리고 조심스럽게 흘러가던 첫 악장과는 대조적으로, 더 밝고 경쾌한 선율을 담고 있습니다. 말러 특유의 오스트리아 전통 춤곡인 란틀러(Ländler)가 등장하는 이 악장은 겉으로는 유쾌하고 활발한 느낌을 주지만, 이 안에는 깊은 냉소와 무력감이 숨겨져 있습니다. 밝은 표면 아래 숨어 있는 어두운 감정은 삶의 일상적인 기쁨들이 결국 일시적이고 덧없음을 시사합니다. 이는 말러가 자신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음을 자각하는 순간에 삶의 소소한 기쁨들을 회고하는 장면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악장에서 나타나는 음의 왜곡과 예측 불가능한 전개는 말러의 교향곡 전반에서 종종 드러나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삶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이로 인해 듣는 이로 하여금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이 장면에서 말러는 우리가 종종 삶 속에서 느끼는 기쁨과 환희가 사실은 짧고 일시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3악장: 매우 급하게 (Rondo-Burleske: Allegro assai)

세 번째 악장은 전작들과 달리 매우 긴장감 넘치고 강렬한 론도-부를레스크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이 악장은 빠르고 복잡한 리듬과 함께 매우 강렬한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이는 마치 말러가 죽음에 직면하면서도 그에 대해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듯한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과 싸우려는 강렬한 몸부림이 느껴지며, 동시에 이 악장은 삶의 혼란스러움과 혼돈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부를레스크는 본래 희극적이고 풍자적인 요소를 가진 형식이지만, 말러의 이 악장은 그 희극성 속에서 비극적인 색채가 드러납니다. 이는 마치 삶의 혼란스러움을 한바탕 웃음으로 삼키려는 시도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뚜렷한 절망과 분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악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삶을 향한 강렬한 애착과,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무력함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4악장: 매우 느리고 고요하게 (Adagio)

마지막 네 번째 악장은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듯한 깊은 고요함과 함께 시작됩니다. 매우 느리게 진행되는 이 아다지오는 고통과 갈등을 뒤로 하고 죽음에 대한 체념과 수용으로 나아가는 듯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이 마지막 악장은 말러가 죽음의 수용을 음악적으로 표현한 부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첫 악장에서 나타났던 긴장감이 서서히 해소되며, 음악은 마치 삶의 여정을 마치고 안식처에 도달한 듯한 평온한 마무리로 이어집니다.

 

아다지오는 느린 속도로 진행되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복잡한 감정이 교차합니다.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듯한 선율과, 죽음의 필연성을 수용하려는 듯한 고요함이 서로 대비됩니다. 마지막 몇 마디에서 음악은 점점 희미해지며 사라지듯 끝나는데, 이는 말러가 마지막 숨을 고르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는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그의 교향곡 중에서도 가장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무리지만, 동시에 깊은 슬픔과 고독이 느껴집니다.

 

 

말러의 '교향곡 9번'은 그의 음악적 유언이자,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는 걸작입니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죽음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을 표현합니다. 첫 악장의 불안과 절망, 두 번째 악장의 냉소와 환희, 세 번째 악장의 저항과 분노,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악장의 평온한 체념은 말러가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를 극적으로 드러냅니다. 이 교향곡은 단순한 음악을 넘어, 인간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의 복잡한 감정들을 심도 있게 표현한 예술적 유산으로, 말러가 남긴 가장 감동적이고 개인적인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 이야기] - 파가니니의 악마적 재능과 전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