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가(Fuga), 도망치고 쫓아가는 음악

바흐의 '음악의 헌정' 중 6성 푸가

 

음악 속에서 선율이 서로 쫓고 쫓기며 치밀하게 얽혀가는 푸가는 클래식 음악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푸가는 엄격한 규칙 속에서도 무한한 변화를 만들어내며, 특히 바흐에 의해 완성된 양식입니다. 그렇다면 푸가와 흔히 비교되는 캐논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또한 바흐의 대표적인 푸가 작품들은 어떤 특징을 가질까요?

1. 푸가와 캐논: 무엇이 다를까?

푸가(Fuga)는 라틴어에서 "달아나다"(fugere)와 "쫓아가다"(fugare)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이는 푸가가 선율이 시간차를 두고 서로 따라가는 형식임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선율이 등장하는 음악 형식으로 캐논(Canon)도 있습니다.

캐논은 일정한 규칙에 따라 한 성부가 먼저 선율을 시작하면, 일정한 간격 후에 다른 성부가 같은 선율을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우리가 학창 시절 부르던 돌림노래가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반면, 푸가는 캐논을 기반으로 하지만 훨씬 더 복잡하고 치밀한 구성을 가집니다. 단순히 같은 멜로디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주제(Subject)와 응답(Answer)이 교차하면서 진행되며, 대선율(Countersubject)과 연결 선율(Episode) 등을 통해 더욱 풍부한 음악적 구조를 형성합니다. 또한 주제를 변형하여 전위(Inversion), 역행(Retrograde), 확대(Augmentation), 축소(Diminution) 등의 기법을 활용하며 고도의 작곡 기법을 요구하는 형식입니다.

2. 바흐와 푸가: 음악적 완성의 경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는 푸가를 궁극적인 예술 형태로 발전시킨 작곡가입니다. 그의 대표적인 푸가 작품 중 하나는 《평균율 클라비어곡집》(Das wohltemperierte Klavier) 입니다. 이 곡집은 총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24개의 전주곡과 푸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1권의 첫 번째 곡인 C장조 푸가(BWV 846)는 푸가의 본질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곡은 네 개의 성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치 네 개의 모둠이 돌림노래를 부르는 듯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돌림노래가 아니라, 각 성부가 규칙적으로 주제와 응답을 주고받으며 교차하는 복잡한 구조를 형성합니다.

푸가의 핵심 요소

1. 주제(Subject): 푸가의 중심이 되는 선율로, 한 성부가 시작하면 다른 성부들이 이를 따라간다.
2. 응답(Answer): 주제가 다른 성부에서 반복될 때 조성을 변화시켜(주로 딸림조로) 나타나는 변형된 형태.
3. 대선율(Countersubject): 주제가 반복될 때, 다른 성부에서 주제와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어지는 보조 선율.
4. 에피소드(Episode): 주제가 직접 등장하지 않고 변형된 형태로 나타나는 부분으로, 곡의 전개를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5. 주제의 변형(Transformation): 전위(Inversion), 역행(Retrograde), 확대(Augmentation), 축소(Diminution) 등의 기법을 통해 주제를 변형하여 발전시킨다.

3. 《푸가의 기법》(Die Kunst der Fuge)

바흐가 생애 말년에 남긴 위대한 작품 중 하나인 《푸가의 기법》(BWV 1080)은 푸가 형식의 궁극적인 발전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14개의 푸가와 4개의 캐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푸가 작곡의 모든 가능성을 실험한 걸작입니다.

이 작품에서 바흐는 단순한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하여 푸가를 구성합니다. 예를 들어,

• 주제를 거꾸로 진행하는 역행 푸가
• 주제를 반대로 뒤집는 전위 푸가
• 주제를 길게 늘이는 확대 푸가
• 주제를 빠르게 줄이는 축소 푸가 등

가능한 모든 기법을 동원하여 푸가의 구조적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확장했습니다. 이 때문에 음악학자 롤랑 마뉘엘(Roland-Manuel)은 "바흐는 푸가에서 최대한의 엄격성을 통해 최대한의 확장을 끌어낸다"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4. 푸가, 음악적 규율 속에서 자유를 찾다

푸가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철저한 규칙 속에서 무한한 변화를 창출하는 음악 형식입니다. 특히 바흐의 푸가는 치밀한 구성과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인간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극대화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도 푸가는 음악 이론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필수적인 학습 요소로 여겨지며, 동시에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는 무한한 감동을 주는 음악 형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바흐가 남긴 푸가들은 단순한 연습곡이 아니라, 음악의 수학적 아름다움과 감성적 깊이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위대한 예술 작품입니다.

푸가를 감상할 때, 단순한 돌림노래를 넘어서 각 성부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변주되는지를 주의 깊게 듣는다면, 더욱 깊은 음악적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음악 이야기] - 캐논과 푸가, 음악 속 퍼즐 같은 대화

캐논과 푸가, 음악 속 퍼즐 같은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