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세바스티안 바흐(Johann Sebastian Bach)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서양 음악사의 거장이자,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입니다. 그의 음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대한 명성은 그가 젊은 시절부터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음악적 배움을 추구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흥미로운 일화 중 하나가 바로 ‘악보 도둑 사건’입니다. 이는 바흐의 학습 태도와 당시 작곡가들 사이의 치열한 음악적 경쟁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바흐의 스승 북스테후데와의 만남
이 이야기는 바흐가 20대 초반에 겪은 한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1705년, 20살이던 바흐는 당대 가장 존경받던 오르가니스트 중 한 명이자, 훗날 그의 음악적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디트리히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를 만나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납니다. 바흐는 북스테후데가 오르가니스트로 활동하던 독일 뤼베크(Lübeck)까지 무려 400km를 걸어갔습니다. 걸어서 약 한 달이 걸리는 여정이었지만, 음악에 대한 갈망과 존경심이 그를 멈추지 않게 했습니다. 북스테후데는 독일 북부에서 크게 존경받는 음악가였으며, 특히 오르간 음악의 거장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습니다.
바흐는 이 여행에서 북스테후데의 연주와 작품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의 음악을 자신의 음악적 성장에 큰 자양분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바흐는 약속된 방문 기간보다 무려 3개월을 더 머물며 북스테후데의 음악적 기법을 배우고, 그가 작곡한 여러 오르간 작품과 칸타타를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공부에 그친 것이 아니라, 바흐는 북스테후데의 악보를 무단으로 필사하여 가지고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바로 이 사건이 ‘악보 도둑 사건’으로 알려지게 된 배경입니다.
왜 바흐는 악보를 베껴야만 했는가?
이 사건의 중심에는 당시 작곡가들의 음악 학습 방식과 시대적 배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8세기 초, 음악은 귀중한 자산으로 여겨졌으며, 작곡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널리 공유하거나 쉽게 배포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오르가니스트와 작곡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일종의 비밀 무기로 삼아 음악적 우위를 점하려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작곡가는 악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고, 그들의 작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따라서 바흐와 같은 젊은 음악가들은 존경하는 선배 작곡가의 악보를 손에 넣기 위해 직접 필사를 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특히 북스테후데는 당시 오르간 음악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의 작품을 배우고 연구하는 것은 젊은 음악가들 사이에서 큰 도전 과제이자 기회였습니다. 바흐가 북스테후데의 음악을 베껴서라도 배우고자 한 것은 단순한 모방을 넘어 자신의 음악적 발전을 위한 열정의 표현이었습니다. 바흐는 북스테후데의 작품을 연구하며 그의 음악적 기법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이를 토대로 자신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음악적 경쟁과 학습의 장
이 사건은 단순한 도둑질로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당시 작곡가들 사이에는 스승의 음악을 배우고, 이를 모방하며, 나아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발전시키는 것이 흔한 학습 방식이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작곡가는 자신이 존경하는 선배 음악가의 악보를 필사하고, 이를 통해 작곡 기법을 익혔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일종의 음악적 경쟁을 촉진하는 역할도 했습니다. 작곡가들은 서로의 음악을 배우고, 이를 뛰어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했습니다.
바흐 역시 북스테후데의 악보를 필사하며 그의 음악을 깊이 연구했지만, 단순한 모방에 머물지 않고 이를 자신의 음악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바흐의 오르간 작품을 보면 북스테후데의 영향이 명백히 드러나지만, 동시에 바흐만의 독창적인 해석과 음악적 깊이가 느껴집니다. 이는 그가 단순히 스승의 음악을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자신의 스타일로 승화시켰음을 보여줍니다.
바흐의 음악적 성장과 열정
바흐의 악보 도둑 사건은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음악을 탐구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입니다. 그는 음악에 대한 배움을 멈추지 않았으며, 자신의 한계를 넘기 위해 언제나 노력했습니다. 당시에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아 먼 거리를 걸어가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바흐는 이러한 어려움을 감수하며 존경하는 스승을 찾아갔습니다. 그의 이러한 헌신과 열정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바흐의 위대한 작품들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 사건은 작곡가들 사이의 경쟁적 환경과 그들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바흐는 자신의 음악적 성장을 위해 스스로 학습하며 끊임없이 다른 음악가들의 작품을 탐구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음악 세계를 넓혀갔습니다. 바흐가 북스테후데의 작품을 무단으로 베꼈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당시 음악계에서는 자연스러운 학습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악보 도둑 사건은 단순한 도둑질 사건이 아니라, 그가 젊은 시절부터 얼마나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야기입니다. 또한 이는 당시 작곡가들 사이의 음악적 경쟁과 학습 방식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례이기도 합니다. 바흐는 북스테후데의 음악을 베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하며 거장으로 성장했습니다.
'음악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게 만든 비극 (2) | 2024.10.25 |
---|---|
음악 속에 살아간 천재 작곡가, 슈베르트 (2) | 2024.10.25 |
초연 당시의 스캔들, '봄의 제전' (0) | 2024.10.24 |
예술과 음악의 만남, 그리고 친구를 향한 헌사 '전람회의 그림' (2) | 2024.10.23 |
테너와 베이스 사이에서 가장 인간적인 목소리, 바리톤 (1) | 2024.10.22 |